법영사
 
 
 
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작성일 : 15-01-29 14:59
 동서양정치사상사(3)
지기영
2014.12.30
622
978-89-7032-301-5
33,000


조선은 역사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정치문화면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왔다.
근세 중국과 조선의 역사 전개과정은 공통적으로 성리학의 이념․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끌어졌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청(淸)과의 병자호란을 계기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본고(本稿)에서는 제1장에서 성리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명말청초의 고염무를 위시해 개화기의 담사동 등, 조선에서는 허목, 윤휴를 이어 다산 역시 선진유학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으나, 그들은 다만 성리학의 공소한 면을 지적하였을 뿐 선진유학과 신유학의 근본적 성격의 차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주희는 ‘부자관계가 있기 이전에 그 효(孝)는 이미 존재한다’고 하였고, 아마도 이 말이 성리학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비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효는 공소(空疎)하며, 안원은 이를 두고 ‘리(理)가 일이나 사물과 나뉘면서 허공에 매달린 꼴이 되었다’고 하였다.
유학은 실천철학이며 이러한 현실에 근거, 뿌리하지 않은 관념은 위화감(違和感)을 자아내었고, 학자들의 성리학에 대한 반대․공박 역시 이 하나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신유학은 그 공소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7백년 이상을 강력한 통제력으로 비단 정치세계뿐 아니라, 동양의 사회․문화 전반을 장악하여 왔는데, 그 힘의 한 축(軸)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갖는 절대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도(道)와 형이상학의 명제간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선진유학과 신유학을, 그리고 형이상학과 세계계관의 관계를 해명함으로서 신유학의 절대적 성격의 근거를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다른 하나, 병자호란의 발발(勃發)은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교조주의화한 성리학적 가치관에 따른 숭명(崇明)정신이 결정적 요인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과연 명은 무엇이었나를 묻고자 하였다. 이는 병자호란으로 인한 참화(慘禍)뿐 아니라 조선 근세사의 성격을 정치적으로는 중국의 속국, 사회적으로는 ‘침체․낙후’로 규정짓게 되는 근본적이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였다.
조선조 초기의 대명(對明)관계가 독립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본고는 중국과 조선의 근세 정치사상을 보다 분명하게 들어내기 위해서 같은 시간대에 있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을 상호 비교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단순화한 논리도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다. 또한 중국과 조선을 함께 다루다보니 󰡔동서양 정치사상사󰡕 1․2권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게 되어 이를 앞의 책에서 전제(轉載)하였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제1장 선진유학과 신유학
제2장 명(明)과 조선전기(朝鮮前期)
제3장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제4장 청 초기와 조선 후기 첫 100년
제5장 청 변화기와 조선의 영,정조 시대
제6장 청(淸)과 조선(朝鮮)의 서양문명에 대한 대응
지기영

1960. 서울 경동고등학교 졸업
1966.8 연세 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68.8 고려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정치학 석사
1983. (주)용지전자 대표이사
1993. 인도 배낭 여행
1996. 티벳 수미산 순례